오래전부터 간간히 술을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처음은 포도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포도주에 대해 아는 체를 하면 좀 있어보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가 퍼지기 시작하였고
이건희 회장이 자사 임원들에게 와인을 공부하라고 해서
와인이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출처 : 리디북스(https://ridibooks.com/v2/Detail?id=505000841)
신의 물방울에 소개되는 와인은 저 같은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었고,
저렴한 와인을 상대로 점차 와인에 대해 시야를 넓혀 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느날 지인께서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 진정한 공부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와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술 만드는 일이 손에 익고 술맛도 일정하게 유지되어 가던 때였습니다.
포도주는 오래되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보관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언제부터인가 해마다 술을 2~3병을 보관하였습니다.
언젠가 복분자로 발효와인을 시험적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복분자와인이 와인보다 바디감과 향이 좋아서
술제조는 와인에서 복분자와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와인을 보관하는 대신 복분자를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와인을 만들지 않게 되면서 보관 중이던 와인의 맛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얼마전에 보관 중이던 와인을 개봉하였습니다.
2010년도에 오크칩을 넣고 드라이하게 만든 와인입니다.
당시에 백화산 최고급 포도를 사용하여 정성껏 만든 와인이었습니다.
병은 당시에 구입한 와인병을 재사용하였기에 당초에 붙어 있던 라벨지가 원래 상태로 붙어 있습니다.
다만 제가 간단히 붙인 검정색 라벨이 2010년도에 만든 와인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맛이 궁금합니다.
궁금중을 참아가며 와인의 코르크를 개봉합니다.
포도주와 맞닿아 있는 부분의 코르크는 검붉은색을 띠고 있으며 포도주로 인해 적당히 부풀어 있습니다.
코르크의 상태는 육안으로 보아 아주 양호합니다.
코르크에로 맡아보는 포도주의 향내는 다소 약합니다.
이윽고 포도주를 잔에 따라봅니다.
잔에 담긴 포도주의 빛깔이 진한 갈색입니다.
포트와인과 거의 같은 빛깔입니다.
코끝에 와닿는 향내도 포트와인에서 느끼는 향이과 매우 유사합니다.
맛을 보겠습니다.
약간 카라멜 향기가 나며 포도의 향기는 아주 미미합니다.
맛고 포트와인의 맛과 아주 유사합니다.
포도주를 담그고 이듬해에 먹을 때의 검붉은 보랏빛색과 캠벨포도의 향과 맛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대신 단맛을 뺀 포트와인의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기대에 비해 실망이 매우 큽니다.
창고에 남아 있는 포도주는 음식용으로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중에 파는 포도주처럼 산화방지제를 참가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보관하던 포도주 맛에 실망하는 남편이 애처로웠는지
곁에 앉아 있던 아내가 어느새 감자전을 부쳐왔습니다.
감자전을 보고 있노라니 보관 중이던 복분자의 맛이 또 궁금해졌습니다.
창고를 뒤져서 보관 중이던 복분자와인을 꺼내왔습니다.
2010년도 복분자로 만든 복분자와인입니다.
8년을 어두운 창고에서 저 혼자 익어온 복분자입니다.
8년을 보관한 복분자 와인의 외관이 궁금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복분자와인을 병입할 때 코르크 사이로 삐져나온 복분자와인에서
수분이 증발되고 남은 끈쩍끈적해 보이는 복분자액과
코르크와 와인병사이의 틈새에 자란 곰팡이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이전 포도주에서 느끼지 못한 묘한 설레임에 기대반 조심반으로 복분자를 개봉합니다.
복분자 와인과 맞닿은 부분의 코르크 외관 상태는
코르크에 스며든 복분자와인으로 코르크 조각간의 체결도가 약간 느슨해졌으나 전체적으로 양호합니다.
이미 와인에서 크게 실망한 경험이 있기에 큰 기대를 않하고 있습니다만
코르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복분자 향내가 강하여
8년된 복분자와인에 대해 은근히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술잔에 따르는 복분자 와인의 색이 검붉은 색을 띠고 있습니다.
일단 색상에서는 복분자와인을 담글 당시의 색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당히 생기는 거품으로 보아 바디감이 좋아보입니다.
복분자와인을 따르는 동안에 복분자 향이 잔주위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점점 더 복분자 와인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줍니다.
복분자 와인을 시음해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잘 만들어진 적당한 산도,
코를 통해 전달되는 신선한 복분자 향내,
도수가 느껴지지않는 목넘김,
복분자 와인 특유의 묵직한 바디감!
이제까지 제가 먹어본 복분자와인 중에 최고입니다.
복분자와인의 맛에 감탄하던 아내와 큰애가 고급 와인에는 고급안주가 필요하다며
치즈와 초리소를 준비합니다.
치즈와 함께 먹는 8년묵은 복분자 와인은 이제까지 제가 먹어본 와인 중에 단연 최고인 것 같습니다.
특히 술에서 풍기는 알콜 냄새가 없습니다.
진한 쥬스를 먹는듯한 느낌입니다.
"빈티지"라는 말을 갖다 붙이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떤 첨가물도 추가되지 않은 발효주가
8년이라는 시간동안 색이 변하지 않고 농익은 맛을 유지하는 것이 그저 신기합니다.
이 맛에 술을 만들어 먹는 것 같습니다.
이 맛에 술을 오래 묵혔다가 먹는 것 같습니다.
오래간만에 술만들기를 잘 했다는 생각에 그리고 오랫동안 술을 보관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쉬운 것은 맛이 좋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도
술이 떨어지면 창고에 보관 중이던 복분자를 하나둘씩 꺼내 먹어서
창고에 남아 있는 복분자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2017년도 봄에 전국을 휩쓴 가뭄으로 복분자 농사에 피해가 심했습니다.
가뭄으로 인해 복분자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017년도에는 복분자와인을 담그지 못했다는 겁니다.
오늘 8년된 복분자와인을 개봉한 것도
작년에 담근 복분자와인은 없는 상태에서 복분자와인을 먹고 싶은 충동을 참지못하고 창고를 뒤지 결과이지요.
결국 남아 있는 복분자는 없다는 아타까운 현실입니다. ㅠㅠ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