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시작했을 무렵
선배들을 따라서 이곳저곳을 많이 따라다녔다.
선배들 중에
흑백사진을 고집하시던 A선배와 출사를 다녔다.
A선배는 사진에 조예가 깊어 배울 점이 많았고
사진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A선배의 사진은 좋아보였다.
요즘들어
유독 흑백만을 고집하신던 A선배가 생각난다.
A선배는 자연의 색을 살리는 칼라 사진을 하지 않고
회색으로 표현되는 흑백사진만을 고집하였다.
사진에 대해 초보였던 당시의 나는
흑백사진은 왠지 진부하고 구식 사진처럼 보였다.
TV도 칼라로 나오는 시대에 흑백사진만을 고집하였다.
멋진 칼라 색상대신에
흑백 사진만을 고집하던 A선배를 이해하지 못했다.
1998년 지리산, Hasselblad 503CX CF80mm, Velvia 50, 사진스캔
칼라 사진의 피사체와
흑백 사진의 피사체가 서로 다르기에
A선배와 함께 하는 출사 횟수가 줄어들더니
이내 서로 다른 피사체를 찾아
각자의 사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1998년 뱀사골계곡, Hasselblad 503CX CF80mm, Velvia 50, 사진스캔
인간은 시각적으로 구도보다는 색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진이나 회화의 구도보다는 화려한 색상에 시각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에
과도한 색상이 인위적으로 추가된 칼라 사진을 보고 우리는 감탄하곤 한다.
그러나,
인위적인 색상이 과하게 추가된 사진은
마치 조미료를 많이 넣은 음식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거부감이 생긴다.
흑백의 농담으로 표현되는 흑백사진은
우리가 즉각 반응할만한 색상 정보가 없기에
자연스럽게 사진의 구도와 사진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게 된다.
2011년 프레이케스톨렌(Preikestolen), D700 Afs24-70mm f2.8
중급 이상의 사람에게는 상급의 이야기 할 수 있으나
중급 이하의 사람에게는 상급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중인이상 가이어상야 중인이하 불가이어상야,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공자의 말씀은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A선배는 사진에서 조미료를 걷어내고
사진의 담백함을 찾고자 흑백사진만을 고집한 것 같다.
[A선배의 1990년대 중반 작품, Rolleiflex 6008 Integral]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어쩌면 실패할지 모르지만
나도 A선배처럼
사진의 담백함을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