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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진에 대한 단상

주말농장에서 맞는 2016년 첫눈

by Gurapher 2016. 12. 4.

오후에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오전부터 부지런히 배추를 뽑았다.

서둘러 배추를 수확하려는데 배추가 얼었다.

얼어서 먹지못할 것 같은 잎사귀를 띁어내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맑았던 하늘이 점점 흐려진다.

날씨도 추운데, 비를 맞아가며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서둘러 김장배추를 수확한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일이 오후 1시경에 끝났다.



추운 몸을 녹이려 난로가 있는 쉼터로 들어 갔다. 

우리는 이 쉼터를 그늘집이라고 부른다.

골프를 치다가 잠시 쉬어가는 그 그늘집으로 누군가가 부르면서 자연스레 그늘집으로 부르게 되었다.


배추를 뽑기 전에 그늘집의 난로에 불을 피웠다.

그늘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난로가 만들어낸 따뜻한 공기가 얼어있던 손을 녹여준다.



그늘집에서 불을 쬐는데 어두웠던 창밖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창을 보니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비예보가 추운 기온 탓에 눈으로 변해 내리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지만 눈은 언제 봐도 좋다.



첫눈치고는 꽤 많이 내린다.

송이도 꽤 크다. 함박눈이 내린다. 



시래기 위로 첫눈이 쌓여 간다.

도심에서 볼 수 있는 시골의 풍경이다.




농한기로 접어든 주말농장 밭 위에 하얀 눈이 쌓여간다.




주말농장 수돗가는 이미 눈으로 뒤덮혀있다.





마늘밭에도 눈이 쌓인다.

마늘밭에서 눈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늘밭을 뒤덮은 은행잎은 눈내리는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솜털같은 눈이 바싹 말라버린 은행잎과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사각사각....

마치 다람쥐가 납엽위를 걷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도심에서 눈내리는 소리를 듣다니, 행복하다.

눈내리는 소리를 들으면 라국장님이 알려주신 싯구절이 생각난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첫눈과 함께 손님이 찾아왔다.

벨기에 수도사가 만들었다는 트라피스트 베스트말레 맥주

트리펠, 술은 알콜도수가 높아야 제 맛이지.

맥주 중에 도수가 가장 높은 트리펠 버전이다. 싱글, 더블, 트리펠, 바로 트리펠이다.

국내에서 구하기가 쉽지않은 맥주이다.



어느새 그늘집에는 난로의 따뜻함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지난 2014년 11월(http://xmouth.tistory.com/66) 이래로 겨울이면 난로와 함께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또, 행복하다.




첫눈이 오는 날, 

난로가 모임 주선자 역할 톡톡히 하고 있다.


눈이 내리면 그늘집이 생각난다.

그늘집의 따뜻한 난로가 생각난다.


눈이 오는 오늘은 라국장님께서 알려주신 설야(雪夜)라는 시가 생각난다.



설야(雪夜)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